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평가 == 무굴 제국에 대한 평가는 꽤나 상반되는 편이다. 일단 긍정적으로는 '''거의 2,000년 만에 인도를 재통일한 대제국'''이며 1600년대에 걸쳐 상당히 오랜 전성기를 누린 제국이었다는 평가가 있으나, 부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존속 기간 절반 가까운 세월을 허수아비로 보내고 결국 영국에게 멸망한 정권'''에다가 '''지나친 이슬람 우월주의로 타 종교인들을 탄압한 제국'''이라는 시각도 존재하는 것이다.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에서는 무굴 제국의 인도 통합을 제일의 업적으로 꼽으며 [[마우리아 왕조]] 이래 수없이 분열되고 갈라져 반목을 거듭했던 인도를 통일, 전성기 시절에 경제적으로 막대한 발전을 이루어낸 점을 부각한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이슬람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전반부 내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던 [[힌두교]] 신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특히 [[악바르 대제]] 시절에는 종교의 관용을 펼치면서 하나된 제국을 형성하려 들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또한 [[자한기르]]나 [[샤 자한]] 등 명군들이 예술에 막대한 후원을 퍼부으면서 현대까지도 인도가 자랑하는 전통 건축물들과 미술품, 공예품들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좋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무굴 제국이 대대적인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친 것은 오직 악바르 대제 시절 한정이었으며 샤 자한이나 아우랑제브 등 후임 황제들은 타 종교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등 지나친 이슬람 우월주의를 내세우면서 제국의 분열을 자초했다. 사실상 이게 무굴 제국이 인도의 무슬림들을 제외한 후대 인도인들에게 욕을 가장 많이 들어먹는 이유다. 게다가 지나친 팽창정책으로 인해서 기껏 얻어낸 영토들에서는 크고 작은 반란들이 끊이지 않았기에 단순히 지도에 표시된 거대한 영토를 보고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이나 [[청나라]]처럼 그 땅이 온전히 황제의 통치력이 미쳤던 곳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아우랑제브가 얻어낸 인도 남부 지역은 그냥 반란지대였다. 말만 무굴의 영토였을 뿐이지.][* 사실 조선이나 청나라는 군주가 지방세력 및 특권계층을 일방적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상당히 중앙집권적인 국가였다. 이런 나라들이야 영토 안에 있는 백성, 재산은 모두 중앙 정부(=군주)의 소유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여타 일반적인 국가들은 그 통치력이 지도에 표시된 영토만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들이 가장 친숙해 하는 왕조가 하필이면 가장 최근에 한반도를 통치했던 조선 왕조와 조선 왕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명,청 제국이어서 '영토 = 그 국가의 온전한 세력권'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을 뿐이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봉건제]]의 영향이 강했던 무사정권(특히 [[센고쿠 시대|전국시대]]와 [[에도 시대]]) 시절의 역사 때문에 그런 인식이 약한 편이다.] 그 외에 무질서한 제위 계승을 통하여 국력을 스스로 깎아먹은 것도 무굴 제국이 비판받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장자계승원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굴 제국에서 역대 황제들은 모두 즉위할 때에 형제들이나 친척들의 반란을 겪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이같은 끊임없는 내전은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에 제살 깎아먹기였을 뿐이었다. 무굴 제국의 무능함 역시 비판적인 요소로 꼽힌다. 1750년대 이후의 무굴 제국은 망해가는 것을 간신히 간판만 부여잡고 있는 수준으로 추락한 상황이었고, [[영국]]이나 [[프랑스]] 등 외세가 침략하는 도중에도 인도의 중앙정부로서 근대화나 산업화에 제대로 나서지는 못할 망정 제 앞가림을 하기에도 급급했다. 그 와중에 제위에 대한 반란이나 궁정 암투는 끝이 없었고 이미 다 망해가는 18세기 후반에도 황제들이 갈아치워지고 [[델리]]의 귀족들이 사사로이 외국과 결탁하는 등 무굴 제국 말기의 모습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이건 당시 인도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다. 무굴 정부는 이미 1720년대 즈음에 인도 전역에 대한 통치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고 주변의 군벌에게 떠밀려다닐 정도로 망한 상태라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는 않았던 상태였다. [[인도]] 사람들의 평가는 지역과 황제들에 따라 큰 폭으로 갈린다. 예를 들어 수도였던 델리 주변의 사람들은 무굴의 수도이자 제국의 중심이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반면, 무굴 제국에 끝까지 저항했던 인도 남부 지방의 주들에 사는 인도인들은 반대로 자신의 선조들이 무굴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지켜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품는다. 또한 [[힌두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의 특성 때문에 황제들에 따라서도 평가가 나뉜다. 힌두교도들과 시크교도들에게 관대하게 대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악바르 대제]]는 인도의 교과서에도 긴 분량이 실릴 정도로 호평이 많고, 가히 인도 역사상 [[아소카 대왕]]과 함께 최고의 명군들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그 평가가 대단히 후하다. 그러나 악바르에 비하여 힌두교를 탄압한 후대의 황제들에 대해서는 평이 그다지 좋지 않다. 대표적으로 [[자한기르]]는 아편 중독자로[* 자한기르는 실제로 대단한 아편쟁이였다.] 술과 여자에 탐닉한 황제로 묘사되며, [[샤 자한]]은 [[타지마할]] 등 아름다운 건물들을 후대에 남기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부들을 혹사시켜가면서까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재정을 파탄낸 황제로 취급한다. 특히 [[아우랑제브]]에 대한 평가가 말 그대로 최악이다. 아우랑제브가 힌두교를 본격적으로 탄압했기 때문인지 영토 확장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인도 내에서는 완벽한 폭군 취급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를 악마화한 조각상이 인도 시내에 전시되어 사람들의 욕을 들어먹을 정도이니 인도인들이 아우랑제브를 얼마나 혹평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아우랑제브를 싫어하는 이들도 그의 군사적 업적만큼은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그의 용맹과 지휘능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특히 인도 내 무슬림들은 아우랑제브에 대한 평가가 파키스탄 사람들만큼은 아니어도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편이며, 이들은 아우랑제브를 비판하더라도 비무슬림 탄압을 비판하기보다는 지나친 정복전쟁을 비판하는 편이다.] 한편 아우랑제브 이후의 황제들은 웬만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별 관심도 없다. 그나마 최후의 황제 [[바하두르 샤 2세]] 정도가 유약하고 무능한 허수아비 정도의 인상으로 남아있다. 반대로 [[파키스탄]] 사람들은 무굴 제국에 대하여 꽤나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슬람교]]가 국교인 파키스탄인만큼 무굴 제국이 힌두교도들을 탄압했다고 해서 딱히 이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오히려 인도와 앙숙인 만큼 이같은 힌두교 탄압 정책을 좋아하기까지 한다.[* 다만 문제는 현재 파키스탄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심각한 국가이기에 힌두교 탄압 정책을 좋아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굴 제국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고 약화됨에 따라 인도 남부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영국]] 등 식민 열강들에게 패망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아우랑제브가 당시 인도 남부의 힌두교를 믿는 소왕국들을 더 효과적으로 밀어붙였어야 한다고 개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덕분에 파키스탄 역사 교과서에는 당당하게 무굴 제국이 자한기르나 샤 자한 시기에 대대적인 문화 진흥을 이루었던 파키스탄-인도 지역의 황금기라고 기재되어 있고, 바부르 미사일이나 압달리 미사일 등 무굴 황제들의 이름을 자국의 신형 미사일에 붙일 정도로 무굴 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파키스탄 사람들처럼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이지만 조상의 나라인 [[벵골 술탄국]]이 무굴 제국에 합병되어 멸망한 것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방글라데시에서 무굴 제국을 좋게 평가하는 이들도 대부분 소수의 [[무하지르]], [[비하르]]인, [[펀자브인]], [[신드인]]이고 주류 민족인 [[벵골인]][* 벵골인 중에서도 [[로힝야]]족은 민족 정체성 형성이 무굴 제국 멸망으로부터 한참 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무굴 제국과 무관한 민족으로 여기며, 그에 따라 후술할 네팔과 스리랑카 그리고 몰디브처럼 무굴 제국에 대해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과 불교가 주류 종교인 줌머족은 무굴 제국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다. 게다가 훗날 서파키스탄(파키스탄의 전신이자 무굴 제국의 후신)이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전신이자 벵골 술탄국의 후신)의 벵골 문화를 심하게 탄압한 점 또한 방글라데시의 벵골인이 무굴 제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어 영향을 줬다. 물론 무굴 제국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별개로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바하두르 샤 2세가 영국에 저항한 것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한다. 역사적으로 무굴 제국과 무관했던 [[인도문화권]] 국가인 [[네팔]], [[스리랑카]], [[몰디브]]에서는 무굴 제국에 대해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티무르 제국을 자신들의 전신으로 여기고[* 티무르 제국을 무너뜨린 [[우즈베크]]족이 티무르 제국 유민들을 흡수함으로써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기원이 되었다.] 무굴 제국이 티무르 제국의 망명 왕조인 만큼 무굴 제국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다. 다만 우즈베키스탄이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세속주의 성향이 강해서[* 윗동네 [[카자흐스탄]]에 비하면 보수적인 편이지만 아랍권이나 인도 문화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이슬람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우랑제브의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에 대해서는 평가가 좋지 않은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